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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한흠목사 제자의 길을 걷는 사람들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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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은보포럼 작성일 20-08-26 18:14

본문

흉내내지 말고, 배우고, 따라가라
각자 목회현장에서 고민하던 제자도의 의미와
목회에 적용한 이야기



고(故) 옥한흠 목사의 10주기를 맞이하면서 그가 그렇게도 간절히 추구했던 제자의 길을 다시 조명해 보았다. 은보포럼에서 다양한 형태로 섬겨오던 목회자들이 각자의 목회현장에서 고민하던 제자도의 의미와 목회에 적용한 이야기를 모아 한 권의 책으로 묶었다.


출판사 서평



제자훈련이 갖는 강력한 힘은 하나님의 말씀과 함께 인도자의 삶의 모범이 뒷받침될 때 발휘된다. 로버트 콜만은 예수의 제자훈련에 있어 중요한 원리가 ‘동거의 원리’라고 말한다.

제자훈련을 하는 사역자들은 잊지 말아야 할 중요한 표어가 있다. 표준을 낮추지 말아야 한다. 우리의 표준은 예수 그리스도이기 때문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닮고 그분처럼 살겠다고 하는 표준을 정해 놓고 살아가는 인생은 다른 사람들과 분명히 구별될 수밖에 없다. 아무리 우리가 살아가는 환경이 어렵고 힘들어도 이 표준을 낮추어서는 안 된다. 낮추면 세상과 똑같아진다. 신앙에 있어서 하향 평준화는 망하는 지름길이다.



프롤로그 중에서



계속해서 이 길을 걸어가려면



한 사람은 그가 태어나 자라고 산 그 시대의 한계 안에 있기 마련이다. 탁월한 영웅이라 할지라도 그 시대에 그에게 주어진 역할을 감당할 뿐이다. 다른 시대의 눈으로 보면, 부족한 면이 드러난다. 역사는 탁월한 성과는 계승하고 부족한 면을 채우고 고치면서 발전해 간다. 역사의 주인이신 하나님은 한 사람을 불러 역사 속에서 일하게 하실 뿐 아니라 그 한 사람을 이을 다른 사람을 불러 그 이야기를 이어가게 하신다.



이번에 10주기를 맞이하면서 고 故 옥한흠 목사가 그렇게도 간절히 추구했던 제자의 길을 다시 조명해 보기를 원한다. 제자훈련이 본질에서 탈선하는 가장 심각한 이유는 제자도에서 멀어진 실용적인 유익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현대 교회의 소비문화가 예수가 보여주신 제자도를 약화시켰다. 그리스도를 따른다고 그럴싸하게 말은 하지만 실제로는 성공적인 목회를 위해 사용하는 프로그램인 경우가 많다. 그런 잘못을 저지르지 않기 위해서는 성경에서 제시하는 제자도가 무엇이며 현대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제자도가 어떻게 삶에 적용되는지를 다시 붙잡아야 한다.



그동안 은보포럼에서 다양한 형태로 섬겨오던 목회자들이 각자의 목회현장에서 고민하던 제자도의 의미와 목회에 적용한 이야기를 모아 한 권의 책으로 묶었다. 원리는 같지만 시대와 상황에 따라 부딪히는 삶의 이야기는 정말 다양하다. 함께 나누는 이야기들이 외롭지만 계속해서 이 길을 걸어가려고 하는 모든 동역자에게 위로가 되고 도전이 되기를 바란다.



책 속으로



율법주의와 반율법주의는 하나의 뿌리에서 나온다. 율법주의로 철저하게 훈련을 받고 의지적으로 삶을 살아가려고 애쓰던 사람들이 결국에는 반율법주의로 돌아가는 경우가 있다. 반대로 반율법주의로 자신의 감정에 따라 삶을 누리던 사람들이 은혜받고 율법주의로 돌아서는 경우도 있다. 양극단에 빠지지 않고 복음을 붙잡는 것이 필요하다.
(31쪽)



제자로서 살아가는 삶의 양식이 성경에서 가르쳐 준 대로 변하는 것이 정상이다. 오늘날 물질만능주의 속에서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의 삶이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에 대한 이해와 제자로서 단순한 생활양식에 대한 헌신이 필요하다. 이런 삶의 구체적인 양식을 구축하는 구체적인 훈련이 필요한 대목이다. 오늘도 지상명령에 순종하여 제자 삼는 많은 교회가, 과연 제자도에 기초한 훈련을 하고 있는지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 (43쪽)



자기 부인의 제자가 되는 것은 겉모습으로 쇼하는 것이 되어선 안 된다. 그것은 비참한 율법주의자의 길이다. 자기 부인하는 예수의 제자가 되려면 행동 변화 이전에 욕망이 달라져야 한다. 소원이 달라져야 한다. 예수로 만족하고 예수만 높이며 내 뜻이 아니라 예수의 뜻을 이루고자 하는 소원으로 바뀌어야 한다. (50쪽)



사람들이 거듭나고 제자로 변화되지 않는 교회는 생명력을 잃어버리고 껍데기만 남은 교회다. 평범한 사람들이 예수를 만나고 은혜를 알고 말씀을 배우면서 자기를 부인하게 되고 예수를 본받아 하나님 나라 사명과 비전에 헌신하게 되는 것, 그것이 주님이 교회에 기대하는 꿈과 비전이다. 그리하여 지극히 작은 자가 천을 이루고 그 약한 자가 강국을 이루면서 놀라운 하나님의 일을 감당하는 사람들로 변화되는 것 하나님은 바로 그것을 기대하고 계시다.
(55쪽)



제자도는 우리의 무리를 선택하는 일이 아니라 예수의 무리를 선택하는 일과 관계가 있다. 더 정확히 말하면, 예수의 무리를 위해 우리가 선택되었다. 교회의 역사를 살펴보면, 예수의 훌륭한 제자들은 예수가 계신 곳에 있기를 원하지 않았다면 함께 어울리게 되리라고 생각조차 못 했던 사람들의 무리에 자신들이 끼어 있는 경험을 했다. 제자의 정체성은 한결같은 마음으로 그리스도의 무리 안에 있겠다는 자발적인 태도다. (92~93)



신앙이 병들고 타락하면서 나타나는 가장 대표적인 현상이 예배와 삶의 분리다. 신앙인이 종교 소비자가 되는 것이다. 주일에 교회에 나가서 설교라는 상품을 구입한다. 개인의 삶이 어찌 되었든 상관없이 그저 복 받고 잘 살 것이라는 설교를 듣는다. 나의 이기심, 명예욕을 정당화해주고 합리화해주는 내용이다. 상품값으로는 헌금이라는 명칭으로 적절하게 돈을 지불한다. 교회는 하나의 사회단체로서 자기 조직을 유지하고 확대하는 데만 관심이 있다. 성경에 기록된 진리를 선포하는 일은 저 멀리 밀려나 있다. (104)



제자훈련이 전인격적 훈련이 되려면, 인도자가 전인격적으로 훈련을 이끌어야 한다. 제자훈련 인도자는 지적인 접근을 통하여 훈련생들이 말씀을 정확하게 보고 그 말씀이 우리에게 제시하는 메시지가 무엇인지를 바르게 이해하도록 도와줘야 한다. 그 과정을 통해 확인한 메시지에 훈련생이 자신의 모습을 정직하게 비춰보고 그것을 통해 올바른 반응을 하도록 도와줘야 한다. 그것이 바로 감정적 접근이다. 마지막으로 감정적 접근을 통해 깨달은 자신의 문제를 어떻게 고칠 것인지를 결정하고 그것을 행동에 옮길 수 있도록 의지적 접근을 시도해야 한다. 따라서 제자훈련이 전인격적 훈련이 되게 하는 것은 전적으로 교재에 담긴 주제의 구성이 아니라 교재를 다루는 인도자의 역량에 의해 결정된다. (145~146)



제자도에 대한 오해가 생기는 이유는 그리스도인의 삶의 여정을 칭의와 성화라는 큰 틀에서 바라보지 않고, 훈련이라는 주제만을 따로 떼어서 관심을 기울이기 때문에 생긴 것이다. 제자도는 단순히 따로 떨어져 있는 주제가 아니라 그리스도인의 영적 성장이라는 칭의와 성화의 과정에 있다. 결국 은혜로 구원을 얻은 우리가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전 과정인 성화의 삶이 바로 제자도의 삶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잘못된 제자훈련의 오해는 제자라는 정의를 무리와 구분된 슈퍼 그리스도인이라 생각하는 것과 훈련을 통해서 변화된다는 과도한 훈련의 강조 그리고 제자훈련의 목적이 ‘재생산’이라는 개념들을 가진다. 제자훈련의 목적이 ‘재생산’이 되면, 전도와 배가 사역을 잘하는 특별한 사람들이 필요하게 되고, 제자훈련은 영적 특공대를 만드는 과정이 되어버린다.  (156~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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